[성명서] 인종을 이유로 한 고용차별을 확인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환영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한다.
지난 해 12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는 난민인정자 A가 고용 과정에서 차별을 당하였음을 이유로 제기한 진정에 대하여, 인종과 피부색을 이유로 고용을 취소한 것은 명백한 차별에 해당함을 확인하였다.
진정을 제기한 A는 한국에 와 비호 신청을 하여 지난한 과정을 통해 난민 지위를 확인 받았다. 하지만 난민인정자로 한국에서 살아가기란 녹록지 않았다. 사회시스템에 접근하기 위한 정보 제공이 일체 배제된 상태에서, A는 100여 곳의 일자리를 알아보고 문을 두드렸지만 거부당하거나 사기를 당하는 일도 겪게 되었다. 그러다 어렵게 서울에 위치한 대형 호텔 내 세탁실에 취업을 할 수 있었는데, 합격 소식을 들은 후 세탁실 업무에 대한 안내까지 받은 다음 날 돌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문자에는 “호텔 세탁실 매니저가 A씨 때문에 세탁실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A는 이번 건을 포함하여 인종을 이유로 한 차별을 수 차례 겪으면서, 고용 차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법적 구제를 받고자 하였다. 그러나 한국에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아, 차별 행위 자체에 대하여는 법적 문제 제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A는 대형 호텔 내 세탁실에서 고용을 취소한 차별행위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며, 아울러 인종에 관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내용의 정책 권고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A의 진정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업체가 A의 채용을 거절한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인종, 피부색 등을 이유로 고용과 관련하여 특정인을 배제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라고 판단하였다. 또한 이 결정에 따라 호텔 내 세탁실 운영 업체에 “진정인의 재취업 의사를 확인하여 채용 불이익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할 것”과 “향후 인종과 피부색 등을 이유로 채용과정에서 특정한 사람을 배제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며, 직원들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하였다.
한편 이번 결정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A가 인종에 관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한 부분에 대해서는 국회의 입법에 관한 내용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하하는 결정을 하였다.
A에 대한 고용을 취소한 행위에 대해 인종 차별임을 확인한 이번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환영한다. 다만,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에 대하여 그 필요성, 이행 가능한 정책 권고 등을 논하지 않고 단순히 각하 결정을 내린 부분에 대하여는 아쉬움이 남는다. A와 같은 이주민을 포함하여 한국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인종, 성별, 나이, 학력 등 다양한 이유로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유엔 경제·사회·문화적권리규약위원회(2017)와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2018)는 한국 정부에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제정을 거듭 촉구하고, 인종차별을 비롯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차별 및 혐오 표현에 대한 대책 수립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행위를 차별로 정의하고 금지하도록 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계속해서 유보되고 있음은 매우 개탄스럽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각종 차별은 시정되지 못한 채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할 것이다. 한국에서 수많은 차별을 견뎌야만 했던 A 역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위와 같은 권고가 내려졌음에도 결국 한국에서의 정착을 포기하고 다시 기약 없는 여정을 떠난 상황이다.
이에 난민인권네트워크와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부당한 차별 대우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루 빨리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정부와 국회에 촉구한다.
2020. 2. 13.
난민인권네트워크, 차별금지법제정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