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5-6 HR#3]
다가오는 3월 21일은 196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생한 ‘샤프빌 학살 사건’을 기리는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다. 인종분리 정책에 반대하는 평화적인 집회에서 69명의 시민들이 희생된 사건을 기억하며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날로, 유엔에서 3월 21일을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로 지정한 지도 벌써 59년이 지났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인종차별은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연이은 반이민, 인종차별적 정책과 ‘인종청소’ 논란으로 국제 사회의 불안감을 증대시키고 있다. 한국은 계엄사태 이후 반중 정서를 부추기는 극우 세력의 선동으로 인해 동포와 이주민에 대한 혐오 표현을 넘어 물리적 폭력까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탄핵 찬성 집회에 절반이 중국인’과 같은 허위 정보를 퍼트리며 혐오 세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극우민족주의 인종차별단체들이 미등록이주민 체포단을 결성해 전국을 돌며 사적으로 이주민을 감금, 폭행, 협박하여 체포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유튜브 등 온라인 상에 올려 홍보하는 등 한국 사회에 가짜 뉴스와 혐오를 선동하며 확산시키고 있다.
한국정부는 혐오 선동 세력을 방관하고 때론 조장하면서 인종차별적인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는 일정한 권역과 업종 내로만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며 고용주에 대한 이주노동자의 종속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노동착취, 임금체불, 열악한 기숙사, 위험한 노동환경 등 이주노동자의 강제노동 상황은 여전함에도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전무한 채 정부는 ‘무권리 상태’의 이주노동자를 늘리고 있다. 농·어업 분야 계절근로자, 조선업기능인력과 선원 등 이주노동자들은 브로커의 개입 및 민간업체에 의해 모집되고 과도한 관리·감시를 받고 있으며, 막대한 송출비용 지불, 여권 등 신분증 압류, 인적보증, 임금착취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다. 위험한 노동이 이주노동자에게 집중되는 ‘위험의 이주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지난해 아리셀 전지제조공장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18명의 이주노동자가 한꺼번에 숨지는 등 산재 사망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양한 체류자격의 이주여성들은 젠더 기반 폭력 피해를 입고 있다. 한국인 배우자와 그의 가족에게 종속되어 있는 결혼이주여성의 체류자격은 불균형한 권력관계를 강화하고 이주여성에 대한 통제와 폭력으로 이어지지만 정부는 이주여성에 대한 젠더기반 폭력 실태를 제대로 파악조차 하고 있지 않다. 위험을 피해 안전한 피난처를 찾고자 온 난민은 한국에서 1%의 낮은 난민인정률, 심사의 장기화, 열악한 생존을 겪으며 좌절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책임은 방기한 채 난민법 개악안 추진을 위해 난민을 제도남용자, 가짜난민, 테러리스트로 둔갑시키는 등 인종차별을 선동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체류자격 부여 조치는 계속적으로 제도화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3월 말 종료를 앞두고 있다. 이주아동을 제외한 미등록 이주민의 정규화 경로는 전무하고 오로지 미등록이주민에 대한 폭력적인 단속추방 만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에 편승해 극우세력이 사적으로 이주민을 감금, 체포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미등록이주민 등에 대한 무기한 구금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0개월의 장기구금이 가능하고, 구금연장에 대한 공정한 심사를 받을 수 없게 되어버린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이처럼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동포, 난민, 이주배경청소년, 유학생, 미등록이주민 등 대다수 이주민들은 한국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수 많은 인종차별과 배제와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인종차별을 정의내리고,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법조차도 없다.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를 포함한 다수의 국제조약위원회가 2009년 이후 한국정부에 12차례나 권고하였음에도 포괄적차별금지법은 아직도 제정되지 않고 있는 부끄러운 현실이다.
우리는 오랜 시간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고 연대해 왔다. 인종차별이 전세계적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고, 한국사회도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 참담한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무력감에 굴복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다시 광장에 나왔다.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모두가 시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누리고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주체적으로 실현해 나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함께 상상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우리는 원한다.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을 철폐하라. 한국정부는 이주민의 인격을 존중하고, 노동과 건강, 사회보장의 모든 면에서 이주민을 차별 없이 대우하라. 단속, 추방, 구금의 폭력을 중단하고, 이주민의 안전한 체류와 생존,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라. 정부는 극우세력의 혐오와 차별 선동을 강력하게 처벌하고 정치권은 이들과의 동조를 당장 멈춰라. 우리 모두는 안전한 일상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살고싶다. 2025년 세계인종차별철폐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요구한다.
⚪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자유를 보장하라! ⚪ 위험의 이주화 중단하고 산업안전 보장하라! ⚪ 젠더폭력 근절하고 피해자의 체류권를 보장하라! ⚪ 난민 인정 확대하고 체류와 생존할 권리 보장하라! ⚪ 동포와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혐중을 중단하라! ⚪ 이주아동청소년 기본권 보장하고 미등록 구제대책 상시화하라! ⚪ 미등록 이주민 강제 단속추방 중단하고 체류권을 보장하라! ⚪ 송출업체와 브로커에 의한 노동착취 근절대책 마련하라! ⚪ 인종차별 철폐하고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2025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 참가단체 일동